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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r

rehabb 2019. 5. 2. 23:25
Don't ever tell anybody anything. If you do, you start missing everybody.
- J.D. Salinger, The Catcher in the Rye


최운, 영업부장

넌 운이 좋아. 네 좆같은 애비 밑에서 안 커서.
저녁 노을이 훤히 들어오는 창문을 마주보고 앉아 그녀는 등을 약간 구부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운은 그녀의 굽은 등만 볼 수 있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눈을 떴다 감는지, 어떻게 담배연기를 내뿜는지 다 알고 있다. 눈꺼풀은 느리게, 담배연기는 한숨을 내뱉듯 내뿜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위어가는 저녁 해를 볼 때에 항상 저렇게 앉아 담배를 태웠다. 담배 하나가 아주 짧아져 끝이 날 때면 어머니는 초조한 듯 필터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런 건 좋지 않다고 운이 몇 번이나 말했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그러다가 해가 완전히 저물면 으레 TV를 켜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엔 붉은 빛이 비쳤다가 또 파란 빛이 비쳤다. 어머니는 종종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도 하고 괴랄하게 웃기도 했다.

여느 조직의 사람들이 그렇듯 운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을 배우고 익혔다. 혜성대부의 직원들 여럿과 소통하며 내부의 신뢰를 배우고 동시에 외부를 배척하는 불신을 배웠다. 원래 이 개같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제가 믿을 구석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지만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어머니는 차라리 잘 됐다며 사람 계산하는 법을 배우라 했고, 운은 착실히 수행했다. 적절한 때에 웃을 줄 알고 또 일그러뜨릴 줄도 알았다. 마치 어머니가 보던 TV 속 배우라도 되는 양.

어머니는 운이 스물다섯 되던 해에 일찍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암이었으나 마지막까지 손 끝에서 담배연기가 떠나가질 않았다. 열일곱 고등학생 때에 운에게 처음 담뱃불을 붙여 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그로부터 8년 후, 운은 어머니의 사그러드는 마지막 불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기상 직후, 운은 항상 침대 위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리고 그것은 운에게 어머니가 이따금씩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

얘, 네 앞에서 담배 피운 건 나니까 네가 일찍 죽으면 나를 미워해야 된다. 네 탓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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